골프하는 사람들은 드리이버를 자주 바꾼다. 성능좋은 고가의 드라이버는 같은 스윙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좋게하고 비거리를 늘려준다는 신념, 즉, 골프 클럽에 대해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각 홀을 마무리하는 퍼터에 대해서는 과학적 접근을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쉬운 퍼팅을 놓치는 경우에도 당기거나 밀었다고 아쉬워하는 말은 자주 들어 보았지만 퍼터때문이란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퍼팅은 가장 쉬운 동작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동작이다. 골프 초보지라도 다른 샷에 비해 비교적 쉽게 퍼팅할 수 있으며, 먼 퍼팅을 단번에 성공시키는 행운도 가끔 누린다. 사실 퍼터는 공을 공중으로 멀리 보내는 도구가 아니고 공을 지면으로 굴리는 매우 단순한 도구이므로 골프 클럽 중 가장 과학적인 요소가 적을 수밖에 없는 용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퍼팅은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실제로 전체 타수의 약 절반이 퍼팅 스트로크이다. 홀의 구성도 항상 2회의 퍼팅을 가정하여 파4 홀에서는 2/4, 파3 홀에서는 2/3, 파 5 홀에서는 2/5가 퍼팅이다.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또는 '250m 드라이버 샷이나 50m 퍼팅이나 같은 1타'라는 귀 익은 말도 있고 프로선수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훈련도 퍼팅이라고 한다. 즉, 골프 가방 속에 들어 있는 14개의 클럽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클럽이 퍼터인데, 이러한 퍼터의 제작에 과학적 요소가 가장 적게 포함되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최근 타구면이 좌우로 볼록한 곡면형 퍼터가 국내 순수기술로 등장하여 그 효과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과 논란이 군낸 골프계에 일고 있다. 나는 곡면형 퍼터 개발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 그 동안 개인적으로 연구했던 문제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여러분이 퍼팅 메카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앞으로 더 좋은 퍼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골프 전문가는 전혀 아니다. 유학 후 1992년에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골프를 접하게 되었고, 현재는 핸디캡 14의 중급 골프 애호가이다. 몇년 전 친구인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주형국 박사와 함께 골프를 치다가 우연히 곡면 퍼터에 관한 아이디어를 듣게 되었는데 나는 귀가 번쩍하여 그 날 이후로 관심을 갖고 곡면 퍼터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먼저 이제까지 개발되어 판매되는 기존 퍼터의 과학적 특성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해 보았지만 별로 얻은 것이 없었다. 메이커를 불문하고 퍼터 홍보에 주로 세 가지 정도의 설명만 반복되었는데, 첫째는 퍼터 헤드의 무게를 양쪽(heel과 toe 방향)으로 분산 시켜 스윗스풋(sweet spot:타구시 헤드에 전해지는 반발력이 작아지는 부위)을 넓혔다는 점, 둘째는 무게 중심을 낮추어 스트로크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점, 셋째는 타구면에 다른 물질을 삽입(insert)하여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정도이었다. 타구면에 사용되는 인서트 물질 중에는 다이아몬드 코팅과 같은 고가의 재료도 있었는데 실제 기능적인 면보다는 장식적인 의미가 강하였다.

온도에 따라 강도가 비교적 쉽게 변하는 폴리머 계통의 물질은 사계절에 따라 온도 차이가 심한 우리의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제품 중에는 타구면에 하니콤(honey comb : 벌집)같은 무늬 자국을 넣는 제품이 나오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이 공을 홀에 놓는데 어떤 상승작용을 주는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품들로 공을 쳐보면서 느낀 점은 역시 잘 치면 들어가고 못 치면 안 들어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모든 퍼터는 사용자가 정확하게 퍼팅하는 경우를 전제로 설계·제작되었고 사용자가 잘못 퍼팅하는 경우는 그 오류가 퍼팅 결과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고가의 제품과 저가의 제품 사이에 기능상의 주요한 차이를 발견할 수도 없었다. 곡면 퍼터의 기본적인 원리는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림 1>과 같은 평면 타구면을 갖는 퍼터의 경우는 헤드가 회전할 때 공이 맞는 타구면도 같은 각도로 함께 회전하여 공의 방향이 바뀌게 되지만 <그림 2>와 같이 타구면이 원형이라면 헤드가 회전되더라도 공이 닿는 타점에서의 접선의 기울기가 일정하므로 공의 방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회전 중심이 항상 헤드의 중앙에 위치해야 하고 헤드가 상하이동 없이 회전만을 한다는 가정 하에 성립하였다.



실제로 헤드의 회전 중심은 위치적으로 헤드의 중앙이 아니다. 또한 퍼팅 동작의 모든 오류는 골퍼의 손에서 발생하고 이는 샤프트를 통해 헤드에 전달되므로 샤프트의 형상과 헤드와의 접합위치 등이 타구면의 적정 곡률과 함께 연구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퍼팅 동작에서의 인적 오류가 통계적으로 분석되어야 했다. 곡면 퍼터에 의한 방향보정효과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퍼팅의 어떤 요인이 공의 방향을 결정하는지를 알아야 했는데,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고 이에 관한 자료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초적인 역학 지식을 이용하여 각종 계산과 실험을 통해 하나씩 규명해 나갔고, 이러한 과정에서 실제로 곡면 퍼터에 의해 사용자의 잘못된 퍼팅 스트로크에 대해서도 공의 방향성이 보정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